미술관 그의 말

창조가 있기 전에 파괴가 먼저 있어야 한다.

고상한 취향이란 얼마나 불쾌한 것인가!

그 취향이란 창의력의 적이다
.
- 파블로 피카소-

피카소와 모던아트전에 다녀왔다. 미술관은 허리가 아픈일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미술관에 갔다. 그것도 아주 즐겁게. 함께라면 어떤 것도 상관없다던 브로콜리의
가사가 생각날 만큼 요즈음 나는 내 취향의 벽을 무너뜨리고 있느 중인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큰 그림은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이번 겨울에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 있나요? 그녀의 말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 있나요?




- 철학의 시작되었던 그리스 철학의 물음은 '인간이 어떻게 참으로 행복해질 수 있냐' 였다.
우리는 아날로그가 옳으냐, 디지털이 옳으냐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
인간이 참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의 방향'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


   처음 만난 사람과 나와 이야기를 시작하면 언제나 내 핸드폰에 대해 언급하게 된다. 내 핸드폰은 3년 전에 s** 핸드폰 회사에서 야심작으로 내 논 ‘슈팅스타 폰’으로, 폴더이긴 폴더인데, 핸드폰 폴더를 아래에서 위로 넘기는 방식이 아닌, 옆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열리는 핸드폰이다. 신선하긴 했지만, 성격 급한 한국인들에게 그 방식은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거추장스러워서 였는지 금새 단종 되고 말았다. 단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 팔린 물건이 ‘공짜폰’으로 나온 것을 덥썩 집어든 나는 그야말로 ‘희귀템’을 지니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새로 산 60만원 짜리 핸드폰도 한 두달 지나면 공짜폰으로 나오는 이 시대다. ‘스마트폰’이 주류를 넘어서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핸드폰 시장에서, 이 ‘슈팅스타 폰’을 기억해주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새로 산 내 60만원 핸드폰이 몇 주 후 공짜폰으로 나오는 핸드폰 시장의 교체 속도야 말로 디지털 사회의 변화 속도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예다. 그리고 이러한 디지털 사회 속에서 사는 개인은 삶의 속도 또한 매우 빠르게 느낀다. 우리는 ‘벌써 한 달이 다 갔다니!’, ‘내 방학이 이렇게 빨리 간 거야?’, ‘헐, 벌써 졸업이라니....’ 등등의 언어들이 아주 익숙하게 녹아있는 일상 속 에서 살고 있다. 변화의 빠름에 대처하며 시간에 떠밀려 살다보면 자기 자신 이외에 가족, 친구들에 대한 돌봄은 상대적으로 뒷전에 밀려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그들과 소통할 시간조차 모자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오늘도 자신의 나태를 책망하며 열심히 달린다. 때문에, 대형 서점에는 시간은 금이니까 효율적으로 잘 다루어야 한다며 시간 관리의 비법을 알려주는 책들,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을 때는 어떤 것부터 먼저 해야 가장 효과적인지 신뢰 있는 언어로 설명해 놓은 자기 계발서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이렇듯 지나친 노동 강도와 또 그를 통해 ‘꿈이 이루어진다’라고 하는 자기 계발적 선언 속에서 ‘인간에 대한 관심’은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디지털 사회의 속도전에선 인간은 없고 노동만 남는다



  디지털 시대의 아이콘이자 우상이 빌 게이츠. 수많은 출판사에서는 빌 게이츠의 생애와 그의 성공 신화에 관한 위인전을 쏟아내고 있다. 재빨리 만들어내고, 재빨리 버리는 그는 디지털 시대의 발달과 함께 미국의 성공 신화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유연화 된 제조방식이 과연 개인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할 것인지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디지털 시대의 재빠른 변화는 ‘유연한 노동’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 시대에 재빠르고 유연하게 적응해야만 살아남는’ 신자유주의의 사고방식에서, 개인은 소외되고 타자화 된 양상으로 나타나기 십상이다. 개인은 늘 자기 자신을 바닥까지 몰아붙여 경쟁에 임해야 하고, 항상 ‘남에게 어떻게 보여 질 것인가’,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사회에서 계속 필요한 존재가 되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관심, 인간성 등은 파괴되어 드러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관심의 부재 속 노동 중독만이 남은 현 시대에선 오직 가시적인 성과만이 자기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끝까지 몰아붙여 경쟁에 적극적으로 돌입해야지 마침내 ‘꿈은 이루어진다’는 사회적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믿음 속에는 그럴 듯한 이유가 없다. 대학생들이 동아리 활동 할 시간도 없이 학점과 영어공부에 얽매여야 하는 그럴 듯한 이유를 모르듯이.



디지털이 낳은 진정성의 결핍



  하지만 인간성의 결여로 설명되는 디지털 사회는 아이러니 하게도 ‘소통의 양’의 측면에선 과거에 비해 그 양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 디지털은 오랜 시간 좀 더 빠르고 유연한 소통을 위해 변화를 시도해 왔다. 삐삐로부터 시작해 핸드폰의 확산, 컴퓨터, 인터넷의 등장, 노트북,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 와이파이존까지 ! 이제 우리들은 걸어가면서도, 까페에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굳이 인터넷이 연결되어있는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손바닥만한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사용하여 소통할 수 있다. 이러한 디지털의 발달은 개인의 삶의 방식에도, 넓게는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 이제 개인은 혼자서도 잘 논다. 디지털이 우리들에게 많은 ‘꺼리’들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MP3, P2P, PMP, 노트북, 핸드폰 등등 이제 카페에서 혼자 와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들은 디지털이 그들에게 안겨 준 많은 ‘꺼리’들을 이용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끊임없이 ‘소통하려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미니홈피나 트위터, 네이트온 , 블로그 등을 통해서 혼자 있으면서도 자신이 오늘 무엇을 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표현하려 한다는 것이다. 소통의 방식이 변했을 뿐이지, 그들은 과거 소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다면 소통의 양이 이전보다 더 늘었음에도, 현 사회를 인간성의 결핍, 바벨탑의 시대라고 부르는 걸까?



  노르베르트 볼츠는 그의 책『보이지 않는 것의 경제』에서 현 사회의 의사소통 방식의 변화를 설명한다. 그는 현대인들이 관계 맺기를 통해 생겨나는 그 무엇보다는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들이 모인 사회는 금방 생겨났다가 금방 사라지는 관계를 통한 공동체의 속성이 지배적인 사회라고 규정짓는다. 싸이월드의 일촌들, 블로그의 이웃들, 트위터의 팔로우 숫자가 중요하지 그들과 얼마만큼의 유대감을 갖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이웃의 블로그에 들어가서 방명록이나 쪽글을 남겼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시 되고, 그 이웃과 어떤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는지, 고민을 나눴다면 어떤 고민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렇듯 유대감이 약한 공동체의 유지 자체가 하나의 소통 양식으로 자리 잡은 현대인들에게 가장 우려되는 점은 '진정성의 결핍'이다. 진정성이 유통되기 힘든 온라인 사회에서는 진정한 나를 찾기보다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나를 원한다. 그러한 보이는 나에 대한 집착이 소통의 진정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날로그적 감수성’은 ‘구식’이 아니지



  혹시 학교 학생회관 앞의 우체통을 아시는지. 전국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던 빨간 우체통이 해마다 2000개 이상 철거되고 있다. 이제는 <아빠 어릴 적에> 같은 전시회에서나 볼 수 있는 소품이 되어버린 그 자리를 문자메시지나 미니홈피 댓글이 차지한 지 오래인 지금, 우리는 '느림의 미학'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손으로 편지를 써서 상대방에게 건네기 까지는 참으로 느린 과정이다. 편지지 디자인, 색깔부터 해서 글씨체, 글씨를 옮겨 적을 펜의 종류, 그림을 그려 넣을까 스티커를 붙일까, 다 쓴 편지지를 한번만 접을까 세 번 정도 접을까, 봉투를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봉투엔 풀칠을 꼼꼼히 할까 가볍게 할까, 받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은 어떻게 쓰지? 우표를 붙여 편지를 보낼까 직접 건네줄까, 완성된 편지는 만나자 마자 건네줄까 헤어질 때 건네줄까, 바로 뜯어보라 할까 아님 집에 가서 혼자 보라할까- 까지.



  한날 한시 온라인에 '로그 인' 되어있는 친구에게 이렇게나 느린 과정으로 손 편지를 보내는 일은 어쩌면 현대인들에겐 답답하다 못해 어리석게 까지 보일 수도 있겠다. '로그 인' 되어있는 친구에게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일은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일과도 같다. 편하고 빠르고 잘 닦여 있는 길. 망설임 없이 엑셀을 밟는 행위는 처음엔 속도의 쾌감이 있지만 익숙해진 후로는 무감각 하다. 반면 종이편지에 우체통을 거쳐 소통하는 일은 국도를 주행하는 일과도 같다. 신호등이 상시 대기하고 있는 느린 길을 주행하다 보면 그 길의 풍경이 보인다. 새초롬한 들꽃부터 어머니의 품 마냥 그 깊이와 크기를 헤아릴 수 없는 산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구불구불한 길을 맛보는 일은 한꺼번에 삼킬 수 없으니 차근차근 차분히 곱씹는 방법 밖엔 없다. 그리고 천천히 곱씹다 보면, 그 길이 곱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는 사실까지도 알게 될 것이다. 불현듯 산낙지가 떠오른다. 한꺼번에 삼킬 수도 없고, 천천히 씹어 먹어야만 하는 구불구불 산낙지가 말이다. 오래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는 사실까지도!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



  누군가가 '아날로그가 좋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날로그' 그 자체가 아니라, '아날로그를 생각함으로써 떠오르는 감정', '아날로그적 감수성'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느리고, 따뜻하고 등등의 여러 이미지들 말이다. 철학의 시작되었던 그리스 철학의 물음은 '인간이 어떻게 참으로 행복해질 수 있냐' 였다. 우리는 아날로그가 옳으냐, 디지털이 옳으냐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인간이 참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의 방향'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디지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작은 성격(앞에서 살펴 보았던 인간성의 파괴, 진정성의 결여 등)들은 자칫하면 네트워크 전체로 확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가능성들에 대해서 한번쯤 자각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 인간을 진정한 호모사피엔스 답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삶을 분석하고 연찬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시대에 물음을 던지는 자, 당연하게 여기던 것을 다른 관점에서 묻는 탐구자가 중요한 시대이다."


겨울모기 그녀의 말

그젠가, 겨울모기가 따뜻한 내 방에서 힘없이 날아다니길래 불쌍하기도 하고 귀찮아서 냅두었다.
내 귓가로만 다니지 않으면 살려둬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어젯밤엔 날 배신하고는 내 귓가에서 앵앵거리다 내가 참다못해 불을 켜면 성냥갑만한 내 방에 감쪽같이 숨어서는
나의 꿀같은 잠을 헤치더니
오늘은 겁을 상실했는지 불이 켜져 있는데도 내 귀에서 앵앵거린다.
막상 잡으려니 애가 워낙 민첩해서 여간 힘이 들길래
결국 오늘 한여름에 방에서 모기 다섯마리가 발견되도 사지않았던 모기 살충제를 구입했다.
어그를 신고 모기 살충제를 사러 다녀오게 만드는 대단한 겨울 모기.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살아보려고 안간힘 쓰는 모기에게 살충제를 칙 뿌려니 힘없이 픽 떨어진다.
힘없이 고꾸라진 모기를 보며 마음 속에서 은근한 쾌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번 여름에 집에 가니 못보던 배드민턴채가 하나 있었다.
우연히 엄마가 그 배드민턴채를 들고 허공을 휙휙 젓는 모습을 보고, 뒤늦게 전기로 모기를 죽이는 도구란 것을 알았다.

엄마는 이 도구를 신기해하는 내게 말했다.
"처음에 모기가 이 채에 걸려 지지직 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는 소름끼쳐서 잘 사용안했는데,
이게 하루이틀이지나고, 일주일, 한달이 지나다보니 그 소름도 둔감해 지더라구. 이젠 지지직 소리를 들을때면 모기를 
잡았다는 생각에 쾌감과 안도감이 들어-  참 무섭지.
살인연쇄사건의 범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이제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아."

아- 잔인성! 잔인성은 코의 후각과도 같다. 쉽게 그 자극에 둔감해져서 무서운건가 보다.
잔인함의 대명사 히틀러도, 연쇄살인범죄자도, 전자모기채로 모기잡는 나도.
그런데 하나의 차이점이 있다면, 후각의 마비 기능은 삶을 좀 더 편하게 만들지만
잔인성의 마비 기능은 삶을 더욱 불편하다 못해 피폐하게 만드는 거. 무섭네


그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에 대한 목록열거 그의 말

좋아하는 것
1. 아침에 먹는 커피 (요즈음은 아라비카나 슈프리모를 더욱 선호)
2. 기름진 음식
3. 깔끔한 일식, 그러나 일본 현지에서 먹는것은 좋아하지 않음
4. 폴더 핸드폰
5. 역사소설
6. 신문의 환율이나 주식란과 같이 숫자가 가득한 면, 통계수치
7. 맥주 긴 캔 한캔 특히 맥스
8. 무한도전과 일박이일 시청
9. 아무 의미없는 낙서
10. 파리바게트 아이스크림 (최근에 사랑하게 됨)
11. 팀 버튼의 영화
12. 생선구이!
13. 봉숭아 물들인 다혜 손톱
14. 낮잠


싫어하는 것
1. 막걸리 3잔 이상
2. 터치스크린
3.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 (저게 엉덩이인지 허벅지인지 모를정도인 경우 혀를 참)
4. 컴퓨터로 만든 음악
5. 크리스찬
6. 교사를 비난하는 뉴스기사 (좋은 교사는 더 많은데 다루지 않는다....)
7. 땀 젖은 티셔츠 (인도덕분에 이것이 정말 괴로운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8. 부자 2세 (망나니일 확률 80프로 이상일듯하다. 아님말고)
9. 불량 청소년
10. 아침 알람 (좋아하는사람이 과연있을까)
11.


24 그의 말

친구를만나 오랫만에 술집을 향했다.
제대를 갓한 친구의 머리는 아직 채 다 길지 못했다.
"뭐 먹을까?"
"아무거나 시켜"
"아줌마 여기 해물 파전에 소주 하나요"
나는 막걸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숙취가 두렵기 때문이다. 막걸리를 먹은 다음날이면 베게에서 머리를 들어올리는 간단한 행동도 사투로 변하곤 한다.
"살만 하냐?"
"나야 뭐.."
"선생질은 할만하냐?"
"생각보다 재밌더라. 기상시간이 정해져 버린 것 빼고는 뭐.."
"부럽다.."
친구는 담배갑에서 담배 한개비를 꺼내 불을 당긴다. 친구의 담배가 바뀌었다. 예전엔 저거 아니었는데.. 나도 친구의 담배갑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순한 담배군..
"담배를 끊어야 되는데.." 친구가 말했다.
"그러게.."
담배가 타는 동안 둘은 말이 없었다.

"복학은 바로 하냐?"
"글쎄다. 어학연수나 다녀올지, 그냥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할지.."
친구의 입에서 나온 공무원 시험준비라는 말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니가 무슨 공무원이냐 푸하."
"그럼 니는 무슨 교사냐?"
"내가 뭐 어때서 임마."
"나는 뭐 어때서. 난 뭐 공무원 하면 안돼냐?"
"짚신 신은 양복 신사 보다 안 어울려 임마"
"후우.. 그럼 방법있냐? 뭐 먹고는 살아야지"

얼큰하게 취해가는 동안. 이야기가 오고간다. 친구의 군대이야기, 나의 사회생활 첫발이야기, 서로의 연애이야기, 학창시절이 이야기. 밖에선 누가 들을라 눈이 사락사락 내려 도로에 내려앚고 있었고 오랬만에 둘은 편안함을 느낀다.

"나이가 먹어가는건 뭐라고 생각하냐?"
"글쎄, 하면 안되는 것, 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나는 거겠지?"
"그말 좋다야. 근데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지던데. 돈 도 벌고 결혼도 할 수 있다."
"그럼 할 수 있는게많아지면서 할 수 없는 것도 많아진다고 하지뭐. 별거냐"
둘은 소주잔을 부딪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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